노래가 좋았다. 대학 때는 성악을 전공했다. 음악교사 생활을 하고 음악학원도 운영해봤다.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 1992년 어느 봄날, 우연히 ‘소리바다’라는 주부노래모임을 만나 함께 노래하기로 했다. 가요와 성악이 의기투합하자 절묘한 화음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노래한지 10여년. 못말리는 주부 6명이 ‘소리바다’에 뛰어들어 짱짱 뽑아내는 노래가 지금 부산을 흔들고 있다.

지난달 18일 낮 부산 사직야구장.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열리기 직전, 야구장에 청아하고 고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애국가 무반주 독창. 전에 보지못한 광경이었다. 애국가는 야구장을 돌아나가 인근의 새미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날 애국가를 부른 주인공은 ‘소리바다’ 회원 손영희(여·42·부산 동래구 사직동)씨.

“난생처음이죠. 다 아는 애국가지만 야구장 필드에서 부른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됐어요. 하루전날 ‘동해물과…’ 하며 연습도 제법 했어요.”

사직야구장에서 애국가 무반주 독창이 있기는 처음이다. 야구장측의 ‘색다른 시도’는 신선한 반응을 불러왔다. 노래도 수준급이지만 친근감이 있어 좋았다는 평가였다. 야구장측은 일요일 홈경기 때마다 손씨를 고정 출연시키기로 했다.

애국가를 부른 느낌에 대해 손씨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애국가는 노래가 아니라 느낌이다. 느낌을 가지니 저절로 노래가 되더라. 응원하는 심정으로 노래했다. 올해는 롯데가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공연은 애국가가 불리기 직전에 있었다. ‘소리바다’ 주부 6명이 힘찬 가창력과 절묘한 화음을 자랑하며 ‘부산갈매기’ ‘닥터닥터’같은 음악을 메들리로 뽑은 것이다. 비록 관중은 500여명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리바다’의 오픈 공연과 애국가 독창은 올해 사직구장이 내놓은 ‘신상품’인데, 내놓자마자 클린 히트를 기록한 셈이다.

‘소리바다’ 매니저 이효동(55)씨는 “이날 무대는 대중공연과 스포츠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보통 아줌마들의 아름다운 반란’을 계속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4시 아시아드 주경기장 ‘지구촌 젊은이의 광장’. 이날 개장축하 무대에도 ‘소리바다’ 아줌마들이 등장했다. ‘언체인 마이 허트’ ‘닥터닥터’ ‘아름다운 강산’이 시원스레 울려나오자 미지근한 광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소리바다’는 MBC ‘주부가요열창’ 입상자들이 중심이 되어 1992년 1월 결성된 주부중창모임. 살림하며 아이 키우느라 바빠 90년대 중반이후 활동을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8월 활동을 재개했다.

노래가 좋아 스스로 ‘소리바다’에 빠졌다는 이들은 지난연말 애창곡 1집을 CD와 테이프로 냈고, 서면 지하철역과 부산역 문화마당에서 정기공연을 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함께하는 노래’를 강조하는 이들은 불우이웃을 위한 공연에도 적극적이다.

손씨는 “우리는 가능하면 ‘함께’ 하기를 원한다. 회원 개개인 모두 노래를 잘 하지만 함께 모여 중창·합창을 하면 두배 세배 잘한다. 함께 하면 숨어 있는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리바다’의 노래를 듣고 싶으면 홈페이지(www.soribada.or.kr)를 찾아가면 된다. / 박창희기자